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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포스팅: 무기력증: 세상을 포기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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惡은 마치 장기간의 독재정치 아래 있는 국민처럼 관습처럼 자행되고 있으나 국민은 체념과 무기력으로 불편한 줄 알면서도 저항할 수 없는 상태에 있다. 개인심리로는 만성우울증이나 심지어 급성증상이 타 버리고 잔유증상이 남은 만성정신병 상태에 비유될 수 있다 … 우리의 민담은 우리가 그 고통을 고통으로 알고 그 의미를 생각하는 순간부터 개인적으로는 인격의 재생, 집단적으로는 사회의식과 시대의식의 개혁의 기회가 온다는 사실, 그리하여 각자의 마음의 무의식적 측면에 대하여 통찰할 수 있게 됨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 통찰의 성과는 마치 괴물과의 대응 끝에 얻는 값진 보배나 괴물에 붙잡혀있던 여인을 해방하는 것과 같은 귀중한 인식이다. 그러므로 그런 의미의 악귀는 인격형성에 필요한 조건이기도 하다. 다만 우리의 민담은 그러한 성숙이 성취되기 까지 얼마나 많은 고통과 시련이 선행되어야 했었는가를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다. - 이부영, 『한국민담의 심층분석』

아직 다 읽지는 못했지만 이부영 교수의 『한국민담의 심층분석』을 읽다
공감 가는 부분이 있어 이렇게 포스팅하게 되었다.
이전에도 현대인의 무기력증에 관한 포스팅을 한 적이 있었지만
한국인의 체념과 냉소(자기방어 기제로서의), 불신, 무기력적 성향은
개인이나 소수 집단 수준에서 저항을 해보기에는
너무나도 거대하고 복잡한 사회의 구조적 흐름과
지난 세월 끊임없이 외부 열강에 의해 마치『25시』의 요한 모리츠 처럼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운명이 결정되어온 역사에서 기인한다.

오랜 세월 동안 일반 백성들에게는 아무런 권력도 주어지지 않았으며
유일하게 자신의 주장을 피력하고 관철시킬 수 있는 무기라고는
집단행동으로 집단적 위세를 과시하는 것 뿐이었으나
수직적 사회윤리나 통신시설의 미비, 그리고 권위주의적 정부에 의해
미디어와 여론이 통제당하는 상황 하에서는 그것도 여의치 못하였다.
전국민적 공분을 불러일으키는 커다란 비극이 수반되지 않는 이상,
정치적 의사결정에 직접적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전국가적 집단행동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하지만 WEB2.0 시대의 한국인은 다르다.
파편화된 개인이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방법을 배우게 되었다.
단 한 사람이 올린 컨텐츠에 수 많은 사람이 공감할 수 있음을 배웠고
한 사람의 분노가 단 며칠만에 수 만명의 공감과 공분을 불러일으킬 수 있음을,
온라인 공간이 어떻게 실재적 행동을 촉발시킬 수 있고
현실세계에 얼마만한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를 알게 되었다.
다자간의 풍부한 소통이 가능해진 이 시대의 한국인은
온라인이라는 가상의 공간이 지식의 場일 뿐만 아니라
시공간을 초월한 거대한 여론 광장이 될 수 있음을 인식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수 많은 커뮤니케이션 과정을 통해
자기자신이 처한 부조리한 상황에 대한 인식에,
그리고 그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한 진지한 성찰에 이르게 되었다.


오랜 세월 억눌려 살 수 밖에 없게 만들었던 장애물, 개인적 소통의 한계
새로운 온라인 환경에 의해 서서히 녹아내려 버렸고
오랜 세월 억압되고 굴절될 수 밖에 없었던 개인적 이상과 욕망
 WEB2.0이라는 분출구로 수렴되어 비로소 만개(滿開)하고 있는 지금이다.

앞으로의 민주주의와 이 사회의 역학관계, 사회적 의사결정 구조는
지금까지와는 영원히 다른 모습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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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포스트는 blogkorea [블코채널 : What's PR?] 에 링크 되어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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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I'm KA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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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세력을 키우는 데에는 노련하지만
다른 입장에 선 사람들을 다룰 줄 모르는 자들은
언젠가는 반드시 커다란 저항에 직면하게 마련이다.

그 자신의 세력이 크면 클수록
상대방에게는 거대한 칼을 휘두르는 골리앗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는 궁극적으로 적대 진영의 결집을 불러오고
이러한 악순환은 진영을 바꾸어가며 계속된다.

이는 전통적으로 토론문화에 서툰 한국사회 자체의 문제일지도 모른다.
타협과 양보를 통해 더 나은 방안을 도출하기보다는
자신을 옹호하는 세력을 더 많이 끌어들여
그 무게로 상대방을 짓누르려고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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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I'm KA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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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incent Van Gogh, 『Portrait of Doctor Gachet』
   

 현대인의 주요한 정서적 특성 가운데 하나는 사회적 무기력증일 것이다.
기술적 진화 속도가 갈수록 빨라지고 사회구조가 다원화, 복잡화 되면서
개인의 노력과는 무관하게 결정되는 자신의 환경에 속수무책일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 와중에 평범한 개인은 스스로의 가치에 회의를 품게 된다.
개인은 자신의 행동에 대한 바깥 세상의 반응에 의해
정체성을 확인하고 자존감을 충족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나 하나 빠진다고 달라질 것 없는 세상인데 내가 여기서 왜 이 고생을 해야 하지?"

"내가 나서봤자 뭐가 달라지겠나."

 이기주의, 목전의 이해관계만을 중시하는 태도가 확산되는 것은 어쩌면 지극히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한 마디로, 세상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세상을 포기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람들에게 무력감에서 벗어나 일정한 '행동'을 하도록 유도하고자 한다면,
그 행동을 취할 경우 세상에 긍정적이고도 분명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즉각적이고도 구체적이며 명시적인 증거가 제시되어야 할 것이며, 이 '행동'이 그들의 영향력을 최대한 확장시킬 수 있다고 느끼는 유일한 창구가 되어야 한다.

 자신의 행위가 커다란 사회적 변혁의 주체가 될수있다는 증거들이
눈 앞에 명백해지면 질수록, 행위의 참가자는 지금까지 사회의 객체이자
부품의 일부에 불과했던 자신의 힘이 그만큼 거대한 것이었다는 것을 증명해준
이 '행동'을 주창한 무리들의 독실한 신도이자 전도사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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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I'm KA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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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편견. 개인적 도덕률. 터부. 형법. 가부장적 질서. 관료제에 의해 억압되고 굴절된
대중의 욕구를 마음껏 발산할 면죄부따스한 인간의 얼굴을 한 채 쥐어주거나
떳떳하게 이를 해소할 협소한 해방구를 마련해 줄 것.

그 순간부터 그들은 당신의 광신도, 위대한 소영웅(小英雄)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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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I'm KANE


서구의 자아발현적 개인주의와는 다르다.

본디 강한 유대관계를 바탕으로 한
집단주의적 인간관계 개념을 지닌 한국인들에게
산업화 이후의 갑작스런 인구폭발은
타인과의 관계설정 기능 과부하를 일으키는 원인이 되어,

지속적 관계를 지향하는 자들(가족, 친구, 직장동료 등) 이외의 존재와는
처음부터 관계의 발전에 한계를 긋고 차단함으로써
심리적 안정감, 안식을 얻고자 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절친한 지인도 아니요, 완전한 타인도 아닌
인간관계의 경계선에 위치한 어정쩡한 관계가
그토록 많다는 사실이,
우리 마음의 깊은 곳에서 심리적 불안감을 야기시키고 있는 것이다.

사실, 이것은 개인주의도 이기주의도 아니며,
단지 서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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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에게는 책임이 없다"

이 한 마디가 평범했던 한 인간을
가공할 괴물로 만들고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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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I'm KANE
대중은 미래가 불확실할수록
기존에 유지해왔던 행동양식에 더욱 더 집착하게 되며,
설사 그것이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손해가 될 지라도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자위하며
근거없는 낙관주의의 늪에 빠져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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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I'm KANE

좋은 사람도 아니고 나쁜 사람도 아니며 위대한 사람도 아니고 평범한 사람도 아니다. 단지 인간은 위대해야 한다는 우리의 과도한 기대를 만족시키기 위해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사람이다 - 다니엘 부어스틴,『이미지와 환상』

대중은 칭송할 대상이나 저주할 대상이 각자
완전한 절대선이거나 절대악의 정체성을 갖기를 바란다.
고로 존경하는 인물의 오점은 크게 신경쓰지 않거나 애써 덮으려 하고
적대시하는 인물의 긍정적 업적은 애써 폄훼하려 한다.
그럼으로써 그들은 '마음의 안식'을 얻는 것이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인지부조화라 한다)

대중에게 있어 유명인에 대한 태도는
오로지 절대긍정/절대부정/완전한 단절(무관심)만으로 나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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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I'm KANE